양천구 청소년 상담실

total : 59, page : 1 / 3, connect : 0
내가 본 빅토리아 폭포
양천구 청소년 상담실  2008-09-08 12:32:19  [조회 :  1,282 ]

김인숙  

    내가 본 빅토리아 폭포(내가 본 남아공에 이어 4회째 여행기임)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 출발한 우리 일행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경을 넘어 짐바브웨의 빅토리아 폴스(Victoria Falls) 공항으로 들어갔다. 각처에서 온 여행객이 많아 공항은 무척이나 붐볐다. 이곳의 가이드는 짐바브웨의 현지인 가이드로서 흑인이었다. 조금 쉬운 영어로 알아듣기 편하게 큰 목소리로 친절하게 안내하는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흑인 가이드와 이토록 가깝게 지내보기는 처음이었다. 전에 비행기 안에서 옆 좌석에 흑인과 같이 동행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알 수 없는 거리감과 흑인특유의 체취에 거부감을 갖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가이드의 메너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는 곧 친숙해졌다. 더구나 우리나라 말로 “안녕하세요?” ”감사 합니다” 등등의 말을 가르쳐 주었는데 거의 정확한 발음을 구사할 뿐만 아니라 그 말을 기억해 두었다가 우리말로 인사하고 감사하다는 표현을 어찌나 잘 하는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한국, 일본, 중국, 아프리카 사람이 함께 영어공부를 하면 누가 가장 언어습득이 높겠냐는 질문에 답은 아프리카 사람이라고 한다. 그들은 악보가 없어도 노래를 천성적으로 잘하고 글을 몰라도 여러 부족의 언어를 구사하여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 역시 그 말이 맞구나하고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들의 숙소인 유나이티드 킹덤 호텔까지 가는 길이 어찌나 넓은지 역시 땅덩어리 큰 나라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도로는 넓은데 포장은 2차선 정도만 하고 그 나머지는 잘 닦여있지만 비포장 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 나라 사람들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고 꼭 필요한 최소의 부분만 사람의 손을 거치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호텔 앞에 도착한 우리는 모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그런 호텔의 개념이 아니라 마치 영국의 정원을 옮겨놓은 듯한 아늑한 분위기를 갖춘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호텔이었다. 아프리카의 토속적인 풍광에 유럽식으로 잘 다듬어진 안락함이 어우러진 아주 멋진 정원이 우리의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단지 그 정원을 지나 숙소로 옮겨가는 순간만으로도 지금까지의 모든 여독이 일시에 다 떨어져 나가는 듯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구동성으로 이곳에 온 사람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무슨 일도 하지 말고 그냥 몇일만 쉬었다 가면 만병이 다 나을 것 같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한번 왔다간 사람은 이곳을 다시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1855년 영국의 탐험가 리빙스턴에 의해서 발견된 이 빅토리아 폭포 역시 인공적인 개발이나 변화를 주지 않고 발견된 당시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도록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북미의 나이아가라 폭포와 남미의 이과수 폭포와 함께 세계 삼대 폭포중의 하나인 빅토리아폭포는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국경을 이루며 잠베지강 중류에 위치하고 있다. 발견 당시 영국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폭포로 명명되었고 현지의 이름으로는 “모시 오아 퉁야”라고 하는데 이는 천둥치는 연기라는 뜻이라고 한다. 굉음과 함께 떨어지는 폭포의 소리가 천둥치는 소리처럼 요란하고 떨어진 물보라가 물안개를 이루어 마치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모두 여섯 개의 폭포가 협곡과 계곡을 이루며 연결되어 있는데 물안개가 마치 비처럼 바람을 타고 몰려와 옷이 젖기도 하고 사진 찍기가 어려울정도이기도 하지만 그 계곡에 드리워지는 고운 무지개는 아주 인상적이다. 카메라에 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눈에 담아 뇌리에 보관하는 것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되었다. 미국이나 카나다에서 보는 나이아가라폭포는 강폭이 넓어 배를 타고 폭포의 근접한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어서 그 자연의 장엄함에 완전히 압도되는 반면에 이곳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폭포의 정경과 계곡에 뜨는 무지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저녁엔 빅토리아 폭포상류의 잠베지강으로 나가 배를 탔다. 음력으로 보름이어서 그런지 마치 해처럼 떠오른 밝은 보름달을 보며 서울을 향해 향수를 느끼며 돌아갈 날을 헤아렸다. 외국에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떠나와 있었는데 집에 꿀이라도 붙여놓고 왔는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아쉬움과 보고 싶은 가족과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전의 일상을 그리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여행 마무리 시점의 때가왔음을 느끼며 다음의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덧글 :   0 개
이전글 정직한 삶의 태도 양천구 청소년 상담실  
다음글 내가 본 남아프리카 공화국3 양천구 청소년 상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