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구 청소년 상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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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려는 순간 깨닫게 되더군요' 자살 극복담 들어보니...
양천구 청소년 상담실  2011-11-01 09:46:55  [조회 :  645 ]

'죽으려는 순간 깨닫게 되더군요' 자살 극복담 들어보니... 
 
 
저는 경기도 안산에 살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살면서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자살하려던 절망적인 상황을 이기고 극복하여 희망찬 새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의 부족한 이 글을 통해 다른 분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여 글을 씁니다. 저는 IMF시절까지만 해도 사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떤 분이 보증을 서달라고 하기에 아는 사람이고 친분이 있어 언뜻 도장 하나를 찍었습니다. 이것이 경제적 파장과 가정적 파장을 일으켜 결국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되었습니다.
 
사채는 정말 무서운 핵과 같은 무기이며 전염병과 같은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채보증 몇 천만 원이 금세 1억이 되고, 1억이 3억으로 3년 사이에 불어나 상상 할 수 없는 막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더군요.
 
우리가정은 사채보증을 서주기 전엔 부족하지만 행복했습니다. 융자를 안고 산 집이지만 아파트 두 채가 있었고 저에게는 평생 천직으로 삼고 일해 온 제과점을 경영하고 있었으며 그때 당시 중형차에 가까운 차도 보유하고 있었고, 정말 열심히 성실히 일밖에 가정밖에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사채이자를 막지 못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전화로 협박 그래도 안 되면 가게로 찾아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돈 갚으라는 협박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가족들이 있는 곳에서 기물을 부시고 그 다음엔 저를 끌고 가 협박도 하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어떻게든 사채이자를 갚기 위해 안 가본 은행이 없고 카드사, 캐피탈, 상호신용금고, 사금융에 그래도 안 되자 카드대납에 의해 두 사람 다 신용불량자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에게도 빌리기도 하였고 거래처 업자들에게도 빌리기도 하며 어떻게든 막아보려 하였으나 대책 없는 폭풍우였습니다. 또한 저는 여러 협박에 못 이겨 너무 힘들고 괴로워 사채업자와 싸워보기도 하고 캐피탈회사에 찾아가 무릎을 꿇어보기도 하였으나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결국은 집이나 가게 집기류는 법원에서 압류가 되고 가게와 집도 경매되어 집밖으로 쫓겨났습니다.
 
급하게 아는 분에게 20만원을 빌려 200만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방을 구해 이사를 하였고, 그곳에서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아 2년 동안 집세도 못 내고 가스요금도 못내 2년 동안 냉방에서 살고 따뜻한 물도 쓰지 못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6살짜리 사내 아들이 아내와 함께 외출하였다가 차비가 없어 걸어가는 길에 어린아이가 갑자기 삼각 김밥이 먹고 싶다기에 1개를 사주었는데 허겁지겁 먹더니 더 먹고 싶다고 떼를 썼나봅니다.
 
하지만 500원밖에 없어서 더 사줄 수 없어 애를 겨우 달래 데려가면서 아무도 모르게 1시간을 울며 걸었다는 얘기를 안내가 하더군요. 그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우리부부는 눈물이 납니다. 그 후에도 악순환이 계속되어 보증금 200에 30만 원짜리 집에서도 월세 미납으로 쫓겨나게 되었고, 아는 분의 도움으로 보증금 없이 월세 15만원에 지하방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은 지금도 얘기하기도 싫은 정도입니다. 집 구석구석은 습기로 가득해 곰팡이가 나고 1년 12달 보일러를 켜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집이었고, 1주에 3번 이상은 하수구가 막혀 뚫어주지 않으면 한강이 되었습니다. 그 집에 3년 동안 살다가 그 집에서나마 또 쫓겨날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살 이유가 없는 듯 하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정말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생활에 너무 오래 지치다보니 원수처럼 지냈고, 싸움도 많이 하였습니다. 하루는 자식들 보는데서 싸움이 격해져 아내를 정말이지 죽일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평생 보상해도 부족하고 평생 용서를 받지 못할 일을 했던 것입니다. 삶에 지치고 시달리느니 차라리 죽자라는 생각에 죽을 결심을 하여 어떻게 죽으면 남은 가족에게 더 이상 고통이 없으며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사망보험이라도 많이 들어놓고 죽으면 좀 남을 것 같았지만 그럴 여유조차 없었고, 정말 절망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하는 순간에 어린 자식들과 사랑스런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힘들게 살아갈 아내가 눈에 밟혀 못할 짓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생만 시켰던 아내에게 더 큰 짊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또한 채권단들이 괴롭힘에 힘들었을 텐데도 내 앞에서는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준 아이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아무리 어려워도 주일이면 온 가족이 함께 교회에 같이 가는게 소원이라는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이후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주일 가족들과 같이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자살 직전에 목숨은 내가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목숨은 하나님께 달려있고 데려가시는 것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면 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용기를 얻어 마음을 다시 고쳐먹고 안산시청에 여러 부서에 신청하여 임대주택을 부여받고 입주해 살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하게 시의 도움으로 가족들이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를 얻게 되었고, 우울한 상태에 있던 아내도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모든 것들이 감사하게 느껴지고 주위에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개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피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나빠진 건강을 챙기며 열심히 취업준비중입니다. 정말 모든 것이 감사했습니다. 제가 삶에 희망을 찾고 보니 자살을 결심하는 절망적인 분들을 보면 무언가 돕고 싶어집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자살을 결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의 짧고 작은 이야기가 어려운분들 모두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국민요구에 대한 따뜻한 응답 - 따스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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